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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세포 밥에 독을 타 표적 파괴" 스텔스 항암제 거의 다 왔다

작성자
admin
작성일
2025-09-25 12:26
조회
311

"암세포 밥에 독을 타 표적 파괴" 스텔스 항암제 거의 다 왔다

[스타트업 취중잡담] 차세대 신약 개발에 도전한 스타트업 키텍바이오 '김관묵' 대표

알부민은 혈장에서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단백질이다. 혈액 속에서 영양, 약물 등을 운반하는 역할을 해 알부민을 따로 챙겨 먹는 이도 있다. 그런데 알부민은 달갑지 않은 손님인 암세포의 먹이이기도 하다. 알부민이 암세포의 성장과 증식에 필요한 영양분을 제공하는 탓이다.

김관묵(64) 키텍바이오 대표. /더비비드

김관묵(64) 키텍바이오 대표.

김관묵(64) 키텍바이오 대표는 알부민과 암세포의 기묘한 공생 관계에 주목했다. 알부민에 결합하는 성질을 띤 물질에 항암제를 접목하면 암세포를 효과적으로 표적하는 약물을 개발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키텍바이오가 개발 중인 항암제는 알부민에 숨어 암세포에 도달하기 때문에 ‘스텔스 항암제’란 이름이 붙었다. 김 대표를 만나 조용히 암세포에 도달하는 항암제 개발기를 들었다.


◇우연한 발견에 가슴이 뛰었던 화학자

김 대표는 실험 중 새로운 화합물을 만든 일을 계기로 연구에 몰두하게 됐다. /더비비드

김 대표는 실험 중 새로운 화합물을 만든 일을 계기로 연구에 몰두하게 됐다. /더비비드

김 대표는 서울대 79학번이다. 그 시절 모범생들은 출세를 위해 법학과에 진학하는 게 대세였다. 그가 택한 건 엉뚱하게도 화학과였다. “과학, 기술보단 고시 공부가 각광받던 시절이었습니다. 제가 시골에서 나고 자라서 그런 걸까요. 세속적인 기준에 무뎠던 것 같아요. 그저 과학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카이스트 화학과에서 석사 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15년간 연구원으로 근무하며 백금 항암제 연구에 집중했다. “이제야 고백하지만 사회 초년생일 때는 일에 큰 뜻을 두지는 않았어요. 연구 주제도 전임자의 것을 이어온 것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실험 중 신기한 화합물이 생성됐습니다. 새로운 결합 형태를 지닌 백금 화합물이었어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연구 중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단 걸 처음 깨달았죠.”

이 일은 연구 인생의 분기점이 됐다. 연세대 박사 과정에 진학해 관련 내용으로 논문도 썼다. “책과 논문에 없던 것을 발견한 경험은 저를 참된 연구자의 길로 이끌어줬습니다. 이후 2004년 이화여대 나노과학부 교수로 임용돼, 무기 및 유기 합성 기술에 기반한 다양한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탄탄대로를 걸었다. 연구, 개발 결과물을 기술이전한 경험도 있다. “2000년대 중반에 L형 아미노산을 D형으로, D형 아미노산을 L형으로 상호 변환하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이 기술은 화제가 돼 사이언스지에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기술의 존재가 알려지자 사업가, 투자자들이 러브콜을 보냈어요. 한 상장사를 통해 기술 사업화에 성공했습니다. 현재 이 기업은 비천연 아미노산 공급사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플릭과의 우연한 첫 만남

(왼쪽부터) 키텍바이오 연구진과 김 대표, 연구에 몰두 중인 키텍바이오 구성원들. /키텍바이오

(왼쪽부터) 키텍바이오 연구진과 김 대표, 연구에 몰두 중인 키텍바이오 구성원들. /키텍바이오

2018년경 기존 연구의 연장선에서 예상치 못한 특성을 가진 물질을 발견했다. 미토콘드리아나 리포좀 같은 세포 내 물질을 형광화해 쉽게 볼 수 있게 하는 물질이었다. 학계에서는 이를 ‘세포 이미징’이라고 한다. 세포 이미징을 돕는 물질의 이름을 플릭(FLIC)으로 지었다. 플릭을 다룬 논문은 미국의 화학회지에 실렸다.

플릭을 아이템으로 창업을 결심했다. 예비창업자 지원 프로그램, 실험실 창업 지원 프로그램 등에 선정된 후 수요 조사에 착수했다. “미국으로 건너가 잠재적 수요자들을 만나고 다녔어요. 시장 검증을 해보니 사업성이 부족했습니다. 제게는 신기한 물질이었지만, 시장에 이미 세포 시각화 물질이 많았거든요.”

방향성을 재설정할 때 국내 세포 이미징 형광물질 분야의 권위자인 윤주영 교수와 연이 닿았다. “윤 교수는 빛으로 암을 치료하는 기술 관련 특허를 보유하고 있었어요. 세포 시각화보다 훨씬 사업성이 크다고 판단해서 투자자를 만나고 다녔는데 반응이 미지근했습니다. 한때 빛으로 암을 치료하는 기술에 관심이 반짝 쏠렸다가 치료 범위의 한계가 드러나 관심이 사그라드는 단계였거든요.”


◇알부민에 잘 붙는 물질에 항암제를 붙이면

알부민과 플릭, 항암제의 기전을 보여주는 시각 자료. /키텍바이오

알부민과 플릭, 항암제의 기전을 보여주는 시각 자료. /키텍바이오

또 다시 미궁에 빠졌을 때 은인 같은 발견이 이뤄졌다. 플릭이 알부민에 잘 붙는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알부민은 세포의 기본 물질을 구성하는 단백질의 일종으로, 혈관 속에서 체액이 머물게 해 혈관과 조직 사이의 삼투압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플릭은 알부민에 결합할 때 형광 반응을 보였다.

알부민이 암의 식량이라는 기존 연구 결과를 토대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플릭은 알부민에 잘 붙고, 알부민은 암의 식량이니 플릭에 항암제를 결합하면 암을 표적하는 좋은 치료제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이 가설이 통하려면 알부민과 결합한 플릭이 암 조직에 닿는지부터 확인해야 했습니다. 실험 결과 알부민에 결합한 플릭이 암 조직에서 강한 형광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만큼 강하게 결합했던 것이죠.”

플릭에 항암제를 결합하는 게 관건이었다. “플릭과 항암제를 결합한 약물을 알부민 내부에 숨기는 게 목적이었는데요. 이 과정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플릭과 항암제를 연결하는 물질을 ‘링커’라고 하는데요. 플릭에 링커를 붙이려면 플릭을 변형해야 합니다. 너무 많이 변형하면 알부민에 붙는 힘이 떨어져서 적당한 수준을 찾는데 애 먹었어요. 링커 길이 최적화 과정도 만만치 않았어요. 너무 짧으면 약물이 알부민 내부에 들어가지 못하고, 너무 길면 비용이 증가하거든요. 1년 6개월을 쏟은 끝에 성공적인 접합 조건을 찾아냈습니다.”

스텔스 항암제의 치료 효과를 보여주는 동물실험 자료. /키텍바이오

스텔스 항암제의 치료 효과를 보여주는 동물실험 자료. /키텍바이오

다음 단계는 플릭 기술이 적용된 항암제의 치료 효과를 검증하는 것이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항암제를 알부민에 결합하면 약이 암세포에 더 많이 도달해서 치료 효과가 좋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접근했습니다. 암에 걸린 쥐를 대상으로 알부민에 결합시킨 약물과 결합하지 않은 일반 약물을 비교 실험했더니, 전자의 치료 효과가 훨씬 좋았습니다. 이전까지는 플릭이 암세포에 잘 도달한다는 이론적 가능성만 제시할 수 있었지만, 실제 항암제를 적용한 실험 결과를 확보하면서 자신감을 갖게 됐죠.”

플릭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이론적으로 모든 ADC(항체 약물 접합체) 기반 항암제에 적용 가능하다. “ADC는 외부 물질인 항체를 기반으로 해서 농도에 제한이 있는데요. 일부 항암제는 낮은 농도에서도 효과가 있지만, 어떤 항암제는 일정 농도 이상이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알부민은 인체 내부에 존재하기 때문에 농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알부민 기반 항암제 전달 시스템은 ADC보다 선택의 폭이 넓죠. 또한 ADC에서 사용하는 항암제들을 모두 사용할 수 있어 활용도가 높습니다.”


◇스텔스 항암제의 탄생

서울바이오허브-대원제약 오픈이노베이션 협약식 현장. /키텍바이오

서울바이오허브-대원제약 오픈이노베이션 협약식 현장. /키텍바이오

알부민에 항암제를 숨긴다는 소구점을 살려 플릭과 항암제를 결합한 화합물에 ‘스텔스 항암제’라는 이름을 붙였다. 기술력과 기술의 효용을 증명할 데이터가 확보되자 러브콜이 쏟아졌다. 지난 8월 대원제약의 오픈이노베이션 협력사로 선정됐다. 주관사는 바이오·의료 창업 혁신 플랫폼 서울바이오허브다. SD&K 홀딩스와도 손을 잡고 구체적인 비즈니스 방향성을 논의 중이다.

오픈이노베이션을 스텔스 항암제 사업화의 발판으로 활용할 구상이다. “의약품 개발 경험이 풍부한 대원제약으로부터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데이터 등 실질적인 조언을 받을 수 있어 좋습니다. 공동개발, 기술이전, 투자 등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협업을 진행할 계획이죠. 서울바이오허브 입주도 앞두고 있습니다. 좋은 공간을 비즈니스 거점으로 활용하게 돼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김 대표는 바이오 스타트업의 본질은 연구개발에 있다고 강조했다. /키텍바이오

김 대표는 바이오 스타트업의 본질은 연구개발에 있다고 강조했다. /키텍바이오

김 대표는 바이오 스타트업의 본질은 연구개발에 있다고 강조했다. “연구, 개발로 데이터가 뒷받침돼야 투자유치나 기술이전 같은 기회가 온다고 생각합니다. 동물실험으로 항암제를 알부민에 결합시키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결과는 얻었지만, 합성물의 순도와 혈액 내 변화도 꼼꼼히 검증해야 하죠. 키텍바이오는 아직 초기 스타트업이지만, 파급력이 큰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암 표적 효과도 우수하고 ADC 대비 가격 경쟁력이 있는 항암제를 개발해 암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에게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출처 :  https://www.chosun.com/economy/startup_story/2025/09/25/6YUX5LICF5ALXGDVV2OP7PSG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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